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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mier League/아스날

캠벨의 아스날 이적, ‘진짜’ 이야기 2부: 아스날의 등장, 불가능했던 이야기의 실현 [디 애슬레틱]

토트넘 성골에서 아스날의 배신자로: 솔 캠벨 이적 이야기 2부.

 

1편 먼저 보고 오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블로그 링크)2020/11/28 - 캠벨의 아스날 이적, ‘진짜’ 이야기 1부: 토트넘 캠벨의 고민 [디 애슬레틱]

 

캠벨의 아스날 이적, ‘진짜’ 이야기 1부: 토트넘 캠벨의 고민 [디 애슬레틱]

2001년 4월 8일 일요일이었다(역주-캠벨 토트넘 시절). FA컵 4강 경기가 시작하기 1시간 남짓 남은 시점, 아스날의 선수들은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에서 워밍업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토트넘 핫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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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은 캠벨에 대한 관심을 공식적으로 밝힐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일단 토니 아담스 이후의 팀 구성과 스쿼드의 전반적인 리빌딩을 고민하던 벵거 감독과 데이비드 데인 부회장, 그러니까 이적시장의 해결사와 사실상의 풋볼 디렉터는 잉글랜드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를 보스만 룰을 통해 데려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캠벨 영입의 매력은 분명했다. 최소한 패트릭 비에이라의 이적 요구를 멈추게 할지도 모를 확실한 선수의 영입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국외 클럽들은 1월부터 계약 만료 전에 선수와 접촉할 수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현재 계약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 선수의 현재 구단이 계약을 연장할 수 없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을 시에도 보스만 룰이 적용됐다.

 

벵거는 그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FA 컵 준결승에 앞서 결승전에 진출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토트넘의 거물급 선수들에 대한 찬사를 장난스럽게 쏟아냈지만, 대부분이 그의 관심을 낙관적으로 고려했다. 아스날은 앤드류에게 캠벨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전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토트넘이 선수와의 결별을 발표하고 거의 직후에 직접적인 미팅이 마련됐다.

 

난 에이전트를 착한 에이전트Good Guy와 나쁜 에이전트Bad Guy, 두 부류로 나눕니다. 데인은 말했다. (스카이 앤드류)는 착한 에이전트에 속했어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스카이가 정말 많은 오퍼를 받았다고 말한 건 놀랍지도 않았어요. 인테르도 그 팀들에 속하고 스페인 클럽들도 일부 있다고 했지요 누가 솔 캠벨을 원하지 않겠습니까? 난 스카이에게 다 괜찮으니까, 우린 여기에 거래를 하러 나왔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솔을 만날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솔은 자동적으로 우리와의 접촉을 극도로 꺼렸어요. 그가 아스날의 누군가를 만나는 건 정말 민감한 사건이 되니까요. 그는 만약 우리가 만날 거라면, 아주, 아주 긴밀한 장소에서 만남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죠. 그래서 난 기자들이 출입 허가를 받지 못할 토터리지에 있는 내 정원에서 만나길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가도 괜찮을까요?라고 물었죠.

 

도시가 어둠으로 덮이고, 런던 변두리의 한산한 장소에서 긴밀한 회담이 이뤄졌다. 데인의 별장은 몇 에이커의 넓은 정원과 흠 없이 깔끔한 잔디밭, 물레방아가 있는 연못, 떡갈나무, 자작나무, 수양 버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캠벨은 두 번의 만남에는 그의 에이전트와 벵거도 함께 했고, 이후 세 번은 그와 데인이 단둘이 만나 테라스를 거닐며 축구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고 회상했다. 그건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었다. 캠벨은 확신을 원했다. 이후 그가 데인이 자신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감정을 더해줬다고 한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스날로 와서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어주세요.

 

토트넘에서 8년 간 트로피 하나를 따냈던 캠벨은 아스날에서 5년 만에 네 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아스날의 감독도 함께한 첫 자정 미팅은 다수의 해외구단들이 캠벨의 사인을 받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생각보다는 희망적이었고, 데인과 벵거가 그들의 비전과 신규 영입 계획을 팔 수 기회였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Midnight Express라는 영화를 본 적 있나요 그 영화에서 범죄자들은 탈옥을 위해 절대 오지 않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라는 열차를 기다리며 뜰을 맴돌죠. 데인은 본지 인터뷰에서 말했다. 어쨌든, 나는 우리가 아스날 버전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말 그대로 속아 넘어가는 것만은 아니길 바랐죠!

 

토트넘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선수에게 조차, 그들의 라이벌로 팀을 옮기는 것에는 충분한 매력이 있었다.

 

런던에 남는다는 건 새로운 도시에 적응할 필요성 자체를 지워버린다. 1998년 더블을 달성하고 이후 3년 간 리그 준우승을 한 아스날은 좋은 프렌치 선수들과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손아귀에서 타이틀을 뺏어올 만한 가장 유력한 팀을 구축했다. 일부는 벵거의 아이디어로 디자인된 그들의 훈련장은 프로 선수들의 꿈과도 같았다. 4월 북런던 더비는 2-1이라는 아슬아슬한 스코어로 끝났지만, 양팀의 퀄리티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아스날은 4년 연속으로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팀이었다.

 

데인의 별장에서 몇 번의 미팅을 가진 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이적이 정말 실현 가능할 수 있다는 게 분명해졌다.

 

우리의 대화는 일주일에 몇 번 정도 있었지만, 솔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었기에 여러 번 이야기하는 게 중요했어요. 데인은 덧붙였다. 그는 100킬로가 넘어가는 거구였지만, 속마음을 아주 깊숙한 곳에 숨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솔을 알아가고 이해하기 위해선 심혈의 노력을 다해야 했어요. 그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나는 그와 그의 야망을 존경하게 됐습니다.

 

확실히 솔은 굉장히 불안해했어요. 그는 토트넘에서 빛나는 커리어를 보냈고 그곳에서 존경받았죠. 그는 꼭 아스날이 아니더라도 그가 10년 간 최고로 올라섰던 팀을 떠나는 데에 큰 어색함을 느꼈어요 거의 당혹스러워 했죠. 나는 그에게 우리 아스날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말하며 설득하려 했고, 아르센은 솔을 어떻게 팀에 넣을지, 앞으로 팀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등을 설명했어요.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나는 우리의 케미스트리가 긍정적인 쪽으로 가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정원에서 이야기할 때, 우린 언제나 기자들에게 발각되는 걸 걱정했어요. 사실, 우리는 실제로 들켰습니다 솔은 새벽 3시 쯤에 떠날 예정이었고, 내가 문을 열자마자 내 아들인 개빈이 나이트클럽에서 돌아오더군요. 우리를 본 개빈은 정말 느긋하고 사무적인 태도로 안녕하십니까. 아침 좀 드시고 싶으신가요? 라고 말한 뒤, 우리에게 프렌치 토스트를 만들어줬죠.

 

캠벨이 달걀로 물든 빵을 먹던 한밤중, 그는 점차 아스날로 그의 마음을 기울이고 있었다. 직전 시즌 FA , 리그 컵, UEFA 3관왕을 달성하고 그에게 관심을 보였던 리버풀은 사미 히피아와 스테판 앙쇼의 센터백 라인에 만족하고 다른 포지션을 찾기 시작했다. 캠벨이 토트넘에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동안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왔던 바르셀로나와 인테르가 데인의 희망에 더 큰 위협을 가했다.

 

인테르는 5위로 세리에 A 시즌을 마쳤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로랑 블랑을 빼앗겼다. 그들은 캠벨을 밀라노로 초대했고, 캠벨은 그의 친구인 미들즈브러의 수비수 딘 고든과 만나 모나코에서 짧은 여가를 즐기고 이탈리아 북부까지 차로 네 시간을 달렸다. 그는 밀라노의 미로 같은 길에 당황해 인테르와의 미팅에 늦었지만, 마시모 모라티 구단주와 스포츠 디렉터 지우리아노 테라네오는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와 시내에서 30마일 정도 떨어진 코모의 훈련장 투어를 가졌다. 코모 훈련장은 1961년에 지어진 오래된 시설이었지만, 테라네오는 캠벨이 이번 투어에 감명을 받아 팀에 합류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쉽게 흥분하는 성격을 가졌던 모라티는 지역지에 캠벨은 우리의 것이라고 단언했다.

 

바르셀로나는 라리가 마지막 라운드 발렌시아 전에서 히바우두가 엄청난 바이시클 킥 골로 승리를 가져오면서 간신히 리그 4위로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그 날 밤 캠벨이 캄프 누에 들러 바르사의 시설을 즐기고 갔다는 루머가 돌았다. 그들의 보드진은 실제로 카탈루냐에서 앤드류를 만났다. 계약 제의는 눈이 부실 정도로 엄청났으며, 긍정적인 반응이 바로 오지 않을 경우 50%가 상향된 오퍼가 다시 들어왔다.

어느 쪽이든 아스날에 가는 것보다 간단한 해결책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와 인테르 이적 모두, 옳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바르셀로나가 가장 큰 규모의 딜을 제안했습니다. 앤드류는 말했다. 정말 엄청난 오퍼였어요 20년 전에, 요즘 맨체스터 시티의 탑급 선수들이 버는 액수를 제의했죠. 그런 계약서를 받았다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냥 거기에 서명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돈을 원하니까요. 하지만 솔은 그를 필요로 하는, 이길 수 있는 팀으로 간다는 중요한 기준을 갖고 있었죠. 그 당시 바르셀로나는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거의 리빌딩 단계에 들어가고 있었죠. 인테르도 좋은 팀이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선 그렇지 못했어요.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간과했던 부분은 솔이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가장 낮은 주급을 받는 선수들 중 하나였고 팀 내에서도 평균 이하의 연봉을 받았다는 겁니다. 동료들보다 적은 액수의 돈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선수는 많지 않아요. 솔이 해냈던 걸 그대로 하기 위해선 아주 강인한 인격이 필요할 겁니다. 금전적인 이득은 제쳐두고, 좋아, 이제 내가 원했던 축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죠. 솔은 결국 그에게 (바르셀로나와 인테르에 비해) 적은 금액을 제의했던 팀에 합류했어요. 그는 진지하게 돈을 축구보다 우선으로 하지 않았던 몇 안되는 선수들 중 하나였습니다.

 

캠벨은 토트넘 말년에 끊임없는 감독 교체와 팀의 체계나 철학이 없는 걸 보고 실망감을 키워갔다고 말했다. 새로운 감독이 들어올 때마다 팀의 전반적인 시스템도 바뀌었다. 거의 회전문 급이었죠. 그는 말했다. 반면 벵거의 이데올로기는 훨씬 확고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무패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한 그의 아스날은 잘 짜여진 틀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나는 아르센 같은 좋은 감독과 제 할 일을 다하고, 팀을 위해 싸우고, 승리를 사랑하며 패배를 싫어하면서 최고의 경기를 할 수 있는 선수들을 주변에 두길 원했어요. 캠벨은 말했다. 나는 그런 환경에 있을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런 안정적인 환경이요. 나는 명예에 도전하길 바랐거든요.

 

그들은 이번 이적이 불가피하게 불러올 반응들에 대한 끊임없는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아르센과 데이비드는 믿을 만했어요. 앤드류는 말했다. 우리는 그 이적이 큰 문제를 야기할 걸 알았기 때문에, 가벼이 결정할 수 없었죠. 하지만, 결국 그 선택은 캠벨의 축구 인생에 옳은 선택이 되었습니다.

2001 73일 화요일이었다(역주-처음 날짜로부터 불과 세 달 뒤). 아스날은 그들의 훈련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론들은 6월 마지막 날에 캠벨과 토트넘의 계약이 끝난다는 걸 알고 며칠 동안 그의 미래와 결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도했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아스날이 인테르 같은 높은 주급 줄 수 있는 팀들과 맞먹을 수 있냐는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그러나, 몇몇 기자들은 잉글랜드 대표팀 주전 키퍼 데이비드 시먼의 백업으로 입스위치 타운에서 6m 파운드에 영입된 리차드 라이트가 입단 발표를 할 것을 예상하고 런던 콜니 벵거는 당시 기자들이 두 세 명 밖에 없었다고 기억했지만, 영상 자료를 찾아보면 그보다는 많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를 찾았다. 그 날 클럽의 대외 언론 담당자가 휴가를 받아 해외에 있었기에, 부담당자가 그들을 단지 내 본관 위층으로 올라가 평소에는 선수들의 구내식당으로 이용되는 곳으로 안내했다.

 

현장에 있던 기자 중 하나는 방 뒤쪽에 베이지-브라운 빛깔의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는 걸 보고 살짝 놀랐다고 말했다. 아무도 어떤 상황이었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어요. 물론 우린 그게 라이트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모두가 아스날은 캠벨을 영입하지 않았잖아, 안 그래?라고 되물었죠. 사람들은 이제 절대 불가능할 거라고 봤던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도버 솔이라고요? 저는 토트넘에서 왔습니다만...

 

데인은 이미 아침 일찍이 토트넘의 레비와 예의 차원에서 통화를 마쳤다. 나는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했던 때에 토트넘을 대표했던 이르빙 스콜라 시절부터 언제나 토트넘 디렉터들과 친밀한 유대 관계를 맺은 걸 좋아했어요. 그는 말했다. 앨런 슈가와 나의 관계는 아주 좋았고, 후임 레비와도 괜찮은 분위기를 이어갔죠. 내가 솔과 아스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들에게 설명했을 때에도 그들은 따스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이후 기자회견에서 데인은 기자 무리를 당황시킬 수 있는 기회를 즐겼다. 그는 스크린 뒤쪽에서 나타나 벵거와 캠벨, 앤드류를 안내했다. 앤드류가 옆쪽에 빠져 있는 사이, 세 사람은 카메라 플래쉬 앞에 서서 자세를 취하고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정말 환상적인 클럽입니다. 내 결정은 완전히 축구적인 이유였어요. 훌륭한 팀, 감독 이길 준비를 확실하게 해 놓은 클럽입니다. 나는 이런 팀에 가길 원했고 이제 그런 팀으로 왔네요.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그런 위닝 스피릿을 잃어버리는 동안 계속 좌절해야 했습니다. 다른 상황들이 지나치게 부풀려졌지만, 그런 건 별일이 아니었습니다. 난 혼자 힘으로 버텼어요. 난 야망 있는 사람이고, 축구를 하길 바라요. 탑 레벨에서 뛰는 걸 꿈꿔왔습니다. 그게 내가 여기 온 이유예요.

 

데인은 스포츠 섹션에서 기사들이 대거 업데이트되면서 수억명의 기자들이 웹사이트에 집중하고 있을 때 농담했던 것을 회상했다.

 

나는 좀 더 분위기를 띄우고 싶어서 당신들이 알다시피, 솔은 토트넘에서 왔어요. 그가 도버(역주-영국의 도버 해안)에서 왔다면 우린 도버 솔(역주-Dover Sole이라는 가자미 비슷한 생선이 있다)을 영입하는 거였을 텐데요!라고 말했어요. 그걸로 최소한 아이스 브레이킹은 됐습니다. 왜냐면 모두가 쇼크 상태에 빠져 있었거든요.

 

캠벨의 새로운 동료들도 그의 합류를 믿지 못했다. 몇 주 전만 해도 그들의 숙적의 주장이었던 선수가 어떻게 이젠 그들의 편이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티에리 앙리는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런 루머는 있었지만, 실제로 이적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네요. 아스날에서 15시즌을 보내며 은퇴를 앞두고 있었던 리 딕슨은 말했다. 내 입장에서 그의 이적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토트넘에 가지 않을 거잖아요. 그래서 난 솔이 왜 아스날로 왔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그랬을까? 였어요.

 

그는 북런던을 통합하는 심장을 지닌 공평한 사람이었을지도 몰라요. 난 언젠가 그가 아스날은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먼저 그에게서 등을 돌리기 전에 이적을 끝내는 건 힘든 일이었을 거예요. 그런 이적은 언제나 논쟁을 낳으니까요. 선수들의 입장에서, 그가 당신의 팀을 더 좋게 만들어준다면, 다른 선수는 딱 거기까지만 신경 쓸 겁니다. 그의 활약으로 승리를 따낸다면, 선수들의 통장에는 보너스가 꽂힐 거예요. 그냥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내가 토트넘에 가서 뛰는 걸 보긴 정말 어려울 겁니다.

 

캠벨의 전 팀동료들은 스페인의 라 망가 리조트에서 프리시즌 캠프를 진행하고 있었다. 훈련 세션을 마치고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접수처 뒤 대형 스크린에 뉴스가 떴다. 거기엔 아스날의 훈련장에서 아스날 선수로 입단식을 갖는 솔이 있었어요. 클레멘스는 말했다. 우리 모두가 충격 받았습니다. 그가 프리시즌에도 참가하지 않으면서 더는 우리와 함께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확실했지만, 그 누구도 솔이 아스날로 향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글렌(호들)과 수뇌부 알았을 수 있어도, 난 전혀 몰랐습니다. 그의 결정은 정말 놀라웠어요.

 

누구나 우리의 라이벌리를 알고 있습니다. 런던 어디를 가든, 양팀의 팬들은 서로를 많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난 내 스스로에게 그런 이적이 자신의 사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 안다면 왜 그가 아스날을 선택했는지 되물었어요. 레스토랑이나 작은 구멍가게를 가는 것도 힘들어질 겁니다. 훈련장에 있을 땐 괜찮겠죠. 하지만 일상적인 삶을 사는 평소에는, 팬들의 표적이 되는 겁니다. 그게 내가 그의 결정을 놀라워했던 가장 큰 이유예요. 그런 이적은 삶을 한순간에 180도 바꿔 놓습니다.

 

캠벨은 다시 만난 토트넘 팬들에게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건 그의 결정이었고, 결국 솔은 그가 더 좋은 팀으로 간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가 있던 아스날은 우리보다 더 높은 순위로 리그를 마쳤어요. 솔은 그렇게 하는 게 뭔가를 따내기에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아이디어를 실행한 거죠. 그가 옳은 결정을 했다고 주장할 수 있어요. 하지만 솔에게 굉장히 힘든 시간이 수반됐을 겁니다.

 

토트넘은 결국 대체자로 호들 휘하의 사우스햄튼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딘 리차즈를 8.1m 파운드에 영입했지만, 그걸로 쏟아진 물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그해 11월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치러진 웰컴 경기에서는 분노에 찬 토트넘 팬들이 가로등 기둥에 그 선수의 비열함을 욕하는 전단지를 붙이고, 유다 배너와 풍선을 흔들며 인간 쓰레기, 뚱뚱한 놈 등을 넘어서는 훨씬 심한 챈트를 연호했다. 캠벨이 잠시 사이드라인으로 벗어나자, 그는 음료수병 세례를 맞아야 했다 배신자를 대하는 팬들의 태도가 어떤지 잘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처럼 세븐 시스터즈 도로를 달렸던 선수들도 있었다(역주-북런던의 세븐 시스터즈 로드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과 화이트 하트레인 사이에 위치한다). 팻 제닝스는 두 팀에서 모두 성실하게 뛰며 수많은 팬들을 거느렸다. 로한 리케츠와 윌리엄 갈라스도 캠벨의 망명 이후 몇 년 뒤 아스날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유스팀부터 졸업해 아무 이적료 없이 떠난 성공 캠벨이 가장 큰 화제를 불러왔다. 10년이 지나 포츠머스 선수가 된 때에도, 그는 스퍼스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

 

경기장의 재개발을 앞두고 2017년 화이트 하트레인 고별식에 초청받지 못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1991년 이후 토트넘이 따낸 두 개의 트로피 중 하나를 우승하는 데에 주역으로 활약하고 클럽에서 315경기를 뛴 선수에게 지급될 만한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없다는 사실이 여전히 안타깝다. 그가 버린 팀의 팬들에게는 그 어떤 것도 그의 (아스날) 이적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앤드류는 덧붙였다. 절대요. 왜냐하면 그가 그들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를 선수로서 사랑했던 진정한 팬이라면, 난 그들을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나와 솔에게 인종차별적이거나 그런 메시지들을 보낸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자리는 없어요. 물론 우린 많은 걸 얻었습니다. 우린 그저 동부에서 온 두 흑인이었어요. 분명 우린 토트넘에서 많은 걸 받았죠.

 

솔도 그냥 한 명의 사람일 뿐입니다. 그가 아주 강인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런 모욕을 버티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가 자유계약으로 이적하는 걸 보고 싫어했던 사람들이 있어요. 다른 쪽에는 그가 라이벌 팀으로 이적하는 걸 보고 싫어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둘 다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많겠죠.

 

내게 있어서, 만약 선수가 계약을 이어간다면, 그건 클럽에 대한 충성심이 되는 겁니다. 팬들이 계약을 어기지 않고 그저 재계약만 하지 않은 선수를 욕하는 게 맞을까요? 축구계에서는 약간 다른 룰이 적용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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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Dominic Fifield, Daniel Taylor and Philip Buckingham 2020.11.17

(사진: 디 애슬레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