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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mier League/울브스

울브스 첼시전 리뷰: 압도적 전술가 투헬, 그리고 울브스 축구가 재미없는 이유 [FASTory]

빨리합시다의 칼럼, FASTory입니다. 이름과는 달리 시간이 흘러도 가치 있는 글을 쓰겠습니다.

 

투헬의 첼시 쇼케이스가 울브스를 상대로 펼쳐졌습니다. 아무리 천재 전술가라 해도 온지 하루도 채 안된 상태로 팀을 바꿔 놓는 건 좀 무리가 아닐까 싶었는데 정말 단번에 팀이 바뀌더군요.

 

내가 투헬이다라는 걸 진짜 확실하게 보여준 경기. 90분 내내 첼시가 압도한 경기. 그러나 울브스 역시 스탬포드 브릿지 원정 승점 1점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경기. PL 20라운드 첼시와 울브스의 경기가 어땠는지 함께 살펴보시죠.

 

라인업

양 팀 다 뻔하다면 뻔하지만 예상 밖인 라인업을 들고 나왔습니다.

 

먼저 첼시부터 보시면, 일단 3백을 사용한 게 가장 눈에 띄죠. 그 다음엔 조르지뉴가 중원에 있는 것과 오도이가 윙백에 있는 게 보이고요. 뤼디거도 나왔죠. 베르너와 마운트가 선발 명단에서 빠지고 벤치에 앉았습니다. 캉테는 부상으로 인해 아예 명단에서 제외됐고요.

 

울브스는 다시 한번 3백과 제로톱을 빼들었습니다. 3백은 어느 정도 예상되긴 했으나, 제로톱을 쓴 건 조금 의외였죠. 강팀 상대 3백에 제로톱을 썼던 경기는 리버풀 전이 아무래도 기억에 남는데, 그 경기는 40으로 대패를 당했으니까요. 그때엔 전문 톱이 파비우 실바 하나 밖에 없었다면 이번 경기엔 실바, 쿠트로네, 임대로 합류한 윌리안 주제까지 명단에 있었다는 차이점도 있었고요.

 

전술과 선수들 이야기

압도적인 첼시

볼 소유권을 거의 잃지 않는 모습이 매우 인상깊었던 이번 경기의 첼시였습니다. 볼 점유를 쉬이 내주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들로는 1)기본적인 패스 플레이가 잘 돌아갔다. 2)볼을 빼앗겨도 좋은 압박과 대처를 통해 빠르게 리커버리를 가져갔다. 3)상대의 볼 전개를 어렵게 함으로써 쉽게 볼을 되찾았다. 4)울브스가 압박을 거의 하지 않았다. 정도를 꼽을 수 있어요.

 

물론 뒤쪽에서 의미없이 볼을 돌리면서 점유율만 높이는 볼 소유도 어느 정도 있었으나, 선수들 간의 움직임과 간결한 패스가 벌써부터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조르지뉴가 볼을 잡으면 앞쪽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움직여주면서 패스 옵션을 만들어 준다거나, 하프스페이스-측면에서 지속적으로 볼 전진을 수월하게 하고, 최소한 한 선수는 측면에 쫙 빼놓으면서 전환패스를 받도록 하는 것 등. 조르지뉴와 하프스페이스 얘기는 좀 뒤에서 더 자세히 얘기해볼게요.

 

중원 압박은 정말 이 경기의 핵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순간적으로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선수들을 여럿 두면서 볼을 뺏겨도 바로 역압박에 들어가면서 볼을 잘 탈취하는 게 인상깊었네요. 박스투박스 미드필더로 기용된 코바치치가 열심히 뛰어줬어요. 램파드 시절에는 압박을 어느 정도 강하게 가져가면서도 수비 라인을 내리는 걸 포기하지 못해 중원 포켓이 많이 벌어졌었는데 투헬은 과감하게 라인을 확 올렸죠.

 

울브스의 볼 전개를 방해하는 방식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일단 수비라인에서 2선으로 나가는 짧은 패스 빌드업을 억제하면서 롱패스를 강제하죠. 그 때문에 울브스가 앞으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네베스나 덴동커는 아예 수비라인까지 내려오지 않는 이상 거의 볼을 잡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롱패스를 강제하면서도 코디의 롱패스는 정말 잘 막아냈습니다. 네베스 역시 볼 자체를 거의 잡지 못하니 롱패스를 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요. 첼시 전에서 코디의 롱패스 시도가 6, 성공이 4개였고 네베스의 시도는 9, 성공이 6개였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둘이 합쳐서 30개 정도를 시도하고 25개 정도를 성공했을 거예요. 그만큼 주요한 빌드업 패턴이라는 거죠. 하지만 첼시는 그 핵들을 정확히 알아봤고, 결국 코디 외의 다른 수비수들이 아무렇게나 롱패스를 보내야 했습니다. 이 전략은 아주 큰 성공을 거뒀죠. 볼리와 킬먼이 합쳐서 9개의 롱패스를 보냈는데, 하나밖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킬먼은 성공률 0%를 찍었죠.

 

울브스가 압박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도 첼시의 압도적인 점유율에 매우 큰 영향을 줬습니다. 애초에 울브스는 볼을 뺏기면 1차 디나이만을 시도한 뒤 바로 뒤에 내려앉아 버렸어요. 3톱이 센터 서클보다 아래에 있는 게 기본 수비 전형이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첼시가 볼을 자유롭게 돌리고 점유율도 높였겠죠?

특정 장면을 일부러 집어서 캡쳐한 게 아니라 그냥 아무 장면이나 따온 겁니다. 그냥 모든 선수들이 중앙선을 넘지 않죠. 심지어 첼시 후방에서 볼 돌다가 올라오는 장면이예요.

조르지뉴가 평소에 비해 괜찮은 활약을 했음에도 (첼시 팬들은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이 경기만 보고 판가름 내선 안될 이유는, 아니 대부분의 딥라잉 미드필더들을 울브스 경기를 보고 판단해선 안될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볼을 쉽게 받고 쉽게 내줄 수 있는 환경이면 애초에 못하는 선수가 거의 없어요. 울브스가 자기 수비라인 지키는 건 정말 콤팩트하게 잘하는 팀이니 앞으로 쉽게 내주는 걸 계속 보여준다면 높게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팀들에 비해 미드필더들이 볼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건 확실해요. 대부분의 압박 수치 최하입니다. 근데 후반 막판에 10분 정도 뛴 마운트가 더 잘했으니 향후 미드 조합을 누구한테 어떻게 맞춰줄지는 지켜 봐야겠죠. 거의 최적의 롤을 주고 상대팀 역시 자신이 공간을 얻기에 가장 좋은 팀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냥 평소에 비해 괜찮은 활약을 했다? 그리 메리트가 있다고 볼 순 없습니다.

다만 조르지뉴와 반대로 하베르츠는 좀 더 기대해볼 수 있어요. 왜냐면 울브스는 전방 압박이 상당히 약하고 내려앉아서 자신들의 진영으로 상대가 들어오면 그때부터 콤팩트하게 막아내는 팀인데, 하베르츠의 위치가 조르지뉴보다 1칸 높으니까요. 특히 박스 주변 공간이 있을 때 더 잘하는 선수가 하베르츠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고요.

 

투헬의 생각

하베르츠, 코바치치, 조르지뉴, 오도이 모두에게 좋은 롤을 줬습니다. 하베르츠가 아마 두 팀 통틀어서 가장 많이 뛴 걸로 알고 있는데 계속 하프스페이스를 오가면서 측면으로 달리는 선수들과 간결한 원투를 통해 볼을 전진시키는 롤을 부여받았고, 상술했듯이 코바치치는 박투박과 최후방과 3선의 볼 전진, 조르지뉴는 레지스타(원래도 레지스타였는데 공간을 많이 주려고 노력했죠. 실바와 뤼디거를 통해서 압박이 많이 가지 않도록 해주면서요)로 뛰었습니다. 오도이 윙백은 되게 신선했는데, 정발 윙어로서의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줬죠. 울브스의 왼쪽 윙백으로 나온 누리가 수비에서 안정적인 선수도 아니었으니 뚫어내고 크로스 올리는 플레이가 되게 좋더라고요.

 

하프스페이스와 측면에서의 연계도 굉장히 좋았는데, 측면에 있는 선수들이 직선적으로 들어가면 후방에서 패스를 찔러준다든지, 바로 옆에 있는 선수와 원투를 주고 받으면서 들어가는 움직임이 많이 나왔죠. 그 외에 패스가 좋은 티아고 실바와 뤼디거를 활용하면서 측면에 한 선수쯤은 배치하면서 전환 패스를 용이하게 하기도 했고요.

 

울브스의 답답한 공격

아까 나왔던 롱패스 얘기를 좀 더 해 보자구요. 만약 라울이 있었다면 첼시가 이렇게 쉽게 롱패스를 강제하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전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첼시가 롱패스를 그냥 놔둔 이유는 울브스의 전방에서 공중볼 경합을 하고 따줄 선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3톱에 배치된 선수들 중 네투가 173cm, 포덴세가 165cm라서 178cm 아다마한테 울며 겨자먹기로 패스를 보내줘야 합니다. 그럼 아다마가 몸 좋으니 볼을 따내면 다 됐을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울브스는 내려 앉아서 거의 공격 숫자를 늘리지 않는 스탠스를 취했어요. 그러면 경합을 해도 세컨볼이 애매한 위치에 떨어졌을 때 받아줄 선수가 없다는 거죠.

 

포덴세와 네투, 아다마는 모두 정말 준수하게 볼 키핑과 운반을 할 수 있는 선수들입니다. 네투와 포덴세는 패스도 잘하죠. 하지만 공격숫자가 한 둘 밖에 없어서 상대 수비가 전혀 분산되지 않는 상황에선 이들도 볼을 지켜내기 어렵습니다. 몸싸움을 잘하는 선수들도 아니니까요(물론 아다마는 몸싸움을 정말 잘하지만, 이 경기에선 아다마가 원래 그 짜여진 공격대형에서 우측면에 붙어 볼을 받는 경우도 없었고, 볼을 만진 횟수가 극히 드물었을 뿐더러 볼을 받아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죠. 아다마는 89분을 뛰었는데 부상으로 45분 만에 교체된 누리보다 단 3회 많은 터치를 기록했고, 누리를 제외하면 선발 출장한 필드 플레이어 중 23회로 가장 적은 터치 횟수를 찍었어요).

 

상대가 라인을 끌어올렸으니 그 뒷공간을 공략한다는 발상 자체는 괜찮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좋았을지도요. 다만 한 번에 넘어가는 좋은 패스가 잘 나오지도 않았고, 버텨주는 선수는 너무 부족했다는 게 아쉬웠죠. 라울이 있었으면 혼자 버티고 운반했겠지만 그건 이제 불가능하고.

 

진짜 문제는 이런 식으로 볼 던져주고 너네들 알아서 해 식 공격 전술에서도 잘하는 선수들은 잘한다는 겁니다. 네투, 포덴세는 아주아주 제한적인 공격 상황에서 그래도 유의미한 찬스들을 만들어냈어요. 네투가 특히 멘디가 본헤드 플레이 했을 때 쇄도한다거나 혼자 드리블 돌파 후 크로스를 올리면서 꾸역꾸역 기회를 만들었죠. 허술한 공격 전술을 잠깐 동안 뭔가 있어 보이게 하는 겁니다.

네투의 골대샷이 나온 장면.
그리고 전환패스

네투가 만들어낸 이 두 장면이 거의 유이하게 봐줄 만한 공격찬스였습니다. 이런 거만 봐도 네투는 장차 최소 리그 탑클래스로 클 잠재력이 있어요. 세트피스 왼발 전담을 맡는 킥력, 정말 빠른 스피드, 리그 전체에서 10위 안에 드는 키패스와 찬스 메이킹 능력까지. 절대 놓쳐선 안될 자원입니다.

 

그래도 결과는 0:0

어쨌든, 0:0으로 끝났습니다. 두 팀 다 골을 못 넣었죠. 울브스 공격 얘긴 앞에서 했으니 줄이고, 첼시가 왜 골을 넣지 못했는지 알아 보자구요.

 

일단 지루를 냈다는 거부터 공중볼을 통해서 뭔가 해보겠다는 의도가 보이죠. 이거 또 크로스 하면 램파드 때랑 똑같은 거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전 두 전술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크로스만 올리는 크로스를 위한 크로스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울브스 같이 내려 앉아 있는 팀을 상대로는 딱히 뭔가를 하기가 힘들죠. 하프스페이스에서의 연계를 통해서 크로스를 보다 쉽게 올릴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분명 보였고요.

 

다만 크로스를 통한 마무리를 울브스 상대로 크게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내려앉아 있으니 수비수들이 모두 박스 안에 있고, 다른 선수들도 죄다 내려와주면서 수비에 가담해주니 도저히 박스 안 공간을 만들 수가 없죠. 아무리 지루여도 장신 수비수 셋을 뚫고 정확한 임팩트를 통해서 헤더 골을 따긴 힘들어요. 그래서 첼시 공격이 전체적으로 좋긴 했는데 결과물을 내진 못한 거죠.

 

이런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울브스는 이런 재미없는 축구를 포기할 수 없는 겁니다. 많은 분들이 모르시겠지만 울브스는 최근 몇 경기에서 4231 쓰면서 좀 공격적인 축구를 하기도 했고 라인을 좀 올리기도 했어요. 그 보답이 뭔가요? 12경기 연속 클린시트 실패? 아니면 7경기 연속 무승? 이럴 거면 그 재밌는 축구를 추구할 필요가 있나요? 제가 누누 산투를 정말 싫어하지만, 이런 식으로 3백을 다시 쓴 건 많이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울브스 텐백 재미없다, 뭐 저런 축구를 하냐 이런 얘기들이 있어서 한 얘긴데 이번 텐백에는 충분한 당위성이 있었다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네요. 조금만 더 정돈되고 역습에서 날카로운 모습이 살아난다면 (혹은 제대로 된 톱이 딱 버텨줄 수 있다면) 훨씬 더 까다로운 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4백 전환은 계속 말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선 이상적인 변화이나, 그 과도기에서 첼시를 상대로 안정적인 선택을 하고 괜찮은 결과를 낸 건 크게 칭찬해줄 만 했다고 생각해요.

 

마치며

오랜만에 재밌는 경기였습니다. 물론 울브스 덕분은 아니었고 첼시 보는 맛이 있었던 거지만

 

그래도 울브스, 이 정도면 정말 잘했습니다. 주제도 하베르츠의 헤더를 맞아주면서 성공적인 데뷔를 치뤘고요. 승점 3점을 따내지 못한 건 똑같았지만, 그래도 이전 무, 패 행진과는 달랐습니다. 이 분위기를 좀 더 이어갈 수 있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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