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remier League/울브스

[울브스] 맨유 전 리뷰: 모래성도 쌓다 보면 기대가 생긴다

빨리합시다의 새로운 블로그 FASTory 에서 보기   ☞ 

 

라울의 부상은 아마 올 시즌 두고두고 아쉬울 겁니다. 라울보다 뛰어난 스트라이커는 정말 몇 없습니다. 이 선수 이야기만 나오면 저는 언럭키 케인이라고 말합니다. 연계, 패스, 공중볼, 드리블, 키핑, 골 결정력까지 모두 준수하거나 그 이상인 선수가 바로 라울이죠. 4백 시스템으로 바뀐 지금, 만약 라울이 그 선봉에 있었다면 동료들을 더 잘 이용하면서 득점 기회도 많이 얻어냈을 겁니다. 공격 전술이 아무리 부족해도 그 안에서 방점을 찍어줬겠죠(라울은 공격 숫자가 하나 적은 4백 시스템에서도 꾸역꾸역 9경기에서 4골을 득점했고, 이는 아직까지도 네투와 함께 팀내 최다 득점 기록입니다)... (후략)

- 2020/12/29 - [울브스] 토트넘 전 리뷰

 

네 그렇습니다. 이 글을 쓴지 24시간 정도 됐는데 벌써부터 아쉽습니다. 라울은 울브스의 심장이었습니다. 스트라이커는 파비우 실바한테 기회를 주더라도 일단 센터백부터 사야 한다는 게 제 의견이었습니다만, 아니었네요. 1월 이적시장에 스트라이커를 사오지 못한다면 밑에 풀럼 WBA 셰필드와 하이파이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기세 좋은 맨유의 올드 트래포드 원정에서 이 라인업으로 승점 1점이라도 따내면 기적이라는 예상이 대다수였던 경기. 90분 동안 잘 틀어막으며 기대가 점점 커졌던 경기. 그리고 92분 동안 베스트였던 선수의 좌절로 끝난 경기. PL 16라운드 맨유와 울브스의 경기가 어땠는지 알아봅시다.

 

라인업

더보기


일어나서 라인업을 딱 봤는데 제 눈이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비티냐와 키야나 후버는 올 시즌 첫 리그 선발 출전이었고, 킬먼의 선발 기용도 놀라웠습니다. 게다가 코디가 오른쪽 스토퍼로, 사이스가 스위퍼 위치에 선 건 처음 나오는 전술이었죠. 제로톱은 쫄보 감독 누누가 여러 번 선보였던 거라 그리 놀랍지 않았네요.

 

그냥 보시면 아니 이거 그냥 로테이션 아니냐.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떠냐 라고 하실 수 있는데, 누누의 로테이션은 정말 보기 드문 사건입니다. 교체와 로테가 거의 없다시피 하는 감독이죠. 이번 경기 울브스 스타팅 XI의 평균 연령은 약 25.3세였고 이는 20124월 선덜랜드 이후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어린 선수들로 구성된 명단이었다고 하네요.

 

딱 보면 완전히 내려앉은 다음에 역습 한 두 번만 하고 다시 수비 일변도로 나올 게 뻔하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이 접근법이 나쁜 건 아닙니다. 토트넘 전 이후 하루 쉬고 강팀을 원정에서 만났고, 승점 1점만 따낼 수 있다면 성공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근데 그럴 거면 역습할 때 공격을 어떻게 할지 전술을 짜 놔야지 개인 기량에만 기대고 있는 모습이 참. 더 자세한 얘기는 뒤에서 할게요.

 

전술과 선수들 이야기

3백에 유망주들 많이 나오고 제로톱이다. 이건 무조건 수비만 하다가 역습으로 한 번 해보겠다는 소리죠. 무티뉴와 네베스도 수비 시에 토트넘 맨시티 경기의 호이비에르와 시소코처럼 수비 가담을 열심히 들어가줬고 덕분에 센터백들은 박스 안에 머무르면서 상대 공격을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전반에 텔레스의 크로스가 많이 올라왔지만 박스 내에서 물리적인 수가 많이 차이났기에 위력을 발휘하기 힘들었고, 맨유는 결국 하프타임에 루크 쇼를 투입해 차라리 텔레스의 크로스보단 후버의 뒷공간을 노려보겠다는 전략을 들고 나오죠. 크로스 상황에서 좀 뚫리는 장면도 있었고 브루노 페르난데스에게 결정적 기회를 허용했으나 파트리시우가 잘 지켜줬죠.

 

파트리시우는 이런 양상이 나올 때 좋은 키퍼라는 게 잘 드러납니다. 공중볼을 많이 잡으러 적극적으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나오면 대부분 잘 처리하는 키퍼가 파트리시우죠. PL에서 가장 저평가된 선수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선방 능력과 안정감이 모두 좋은 선수죠.

 

다만 수비할 때 문제점이 드러난 부분도 있었습니다. 상대가 원하는대로 움직이면서 쉽게 공간을 내준다는 것, 그리고 뒷공간을 꽤 내줬다는 것 정도가 되겠네요.

 

수동적인 수비를 하면서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그대로 공간을 내주는 건 울브스가 지속적으로 보여왔던 문제입니다. 40으로 대패했던 웨스트햄 전에서 그 정점을 찍었죠. 내려앉아서 완전히 수비만 하는 팀들은 또 나름대로 끌려나가지 않게 지시가 잘 내려져 있는데 울브스는 그것도 아닙니다. 그냥 끌려가고 공간이 나는데 뒤에 사람이 많아서 어찌저찌 막는 팀이죠. 이건 측면의 좁은 공간에서 나올 때도 있고, 중요한 중앙에서 나올 때도 있습니다. 중앙에서 나왔던 대표적인 예가 앞서 언급했던 웨스트햄 전에 볼리가 안토니오 막으려 끌려갔다가 보웬한테 털렸던 골이 되겠네요.

 

뒷공간을 내준 건 좀 의외였습니다. 원래는 수비 라인이 거의 리그에서 가장 낮은데 이번 경기에서는 라인이 좀 높았어요. 공격 시에 수비 라인을 좀 올리고 있던 울브스였기에, 래쉬포드 같은 선수들한테 한 번에 롱볼이 넘어가는 게 좀 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맨유가 하프스페이스로 찔러주는 패스를 통해 뭔가 만들어보려는 공격을 하기도 했으나, 박스까지 볼 투입이 잘 되진 않았죠. 그렇다고 중앙으로 볼 전개하는 건 더 어려웠는데, 울브스의 라인 간의 간격이 되게 좁았기 때문입니다. 완전 밀집 수비였어요.

 

수비에서 단연 빛난 선수는 사이스였습니다. 크로스가 올라오면 거의 다 사이스가 걷어내고, 슈팅도 몇 개 막아냈습니다. 왼발 센터백으로서 가지는 이점도 있었고요. 코디가 완전 박스 안쪽에서 크로스 막는 수비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코디처럼 편한 위치에 서있으면 사이스는 훨씬 더 잘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코디는 클리어링 할 때 버벅거리면서 불안하고 굴절골도 엄청 많이 내주는 선수라서요. 그 코디는 역시 오늘도 불안한 모습을 꽤 보였습니다.

 

네베스는 토트넘 전에 이어서 이번에도 커버를 잘해줬고, 무티뉴 역시 괜찮았습니다. 볼을 뺏기고 1차 디나이가 나쁘지 않더라고요. 비티냐는 포그바를 따라다니면서 맨유의 후방 볼 무브를 막으려 했는데, 이건 요즘 누누가 공미한테(비티냐 아니면 포덴세겠죠) 많이 맡기는 롤이죠.

 

공격 면에서 보자면 역시나 라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집니다. 동어반복이라는 건 알지만, 라울은 無전술을 뛰어넘어 연계부터 득점까지 모두 해주는 선수니까요. 최근 네투의 폼이 좋음에도 골이 많이 나오지 않는 건 박스 안에서 방점을 찍어줄 9번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스포티비 통해서 경기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장지현 해설도 울브스 공격에는 실속이 없다. 화려해 보이지만 골이 안 나온다. 하고 계속 얘기를 하셨죠. 너무 까는 거 아닌가 하고 잠깐 생각했지만 다 팩트라서 뭐라 할 말이 없더라고요. 정말 실속이 없거든요.

 

전 시즌부터 측면에서 공격을 주로 전개하는 울브스였지만, 그래도 마무리를 위해선 중앙에서 되는 게 있어야 합니다. 측면에서 네투 아다마가 드리블로 상대 수비 둘 셋을 제쳐도 크로스를 올리면 받아줄 수 있는 선수가 하나도 없으니 골이 안 나올 수 밖에요. 울브스의 공격 수준은 165cm 포덴세가 박스 안에 있고 170cm 무티뉴가 뒤이어 침투하는 장면이 다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또 아쉬웠던 부분은 제로톱에 아다마 네투가 최전방이라 아예 상대 수비를 넘기는 볼로 속도 경쟁을 시키면서 한 번의 역습으로 기회를 만드는 장면이 많이 나왔으면 했는데 그런 패스는 별로 하지 않더군요. 네투, 누리가 이런 뒷공간 패스를 받아 좋은 장면을 만들어냈는데 이런 공격이 많이 나오지 않은 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아다마는 이제 거품이 다 꺼져버린 것 같습니다. 터치라인 통해서 하는 드리블이 다 읽혀버렸어요. 그래서 안쪽으로 치고 들어가는 드리블을 요즘 꽤 시도하던데, 오히려 볼만 더 끄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정말 아쉬운 건 자기보다 앞에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가 있음에도 일단 드리블 치고 보는 거예요. 이번 경기에 선발 데뷔한 후버도 세메두처럼 공간을 보고 드리블 치는 게 꽤 괜찮던데 아다마가 볼을 빨리 내어 주질 못했죠. 자기가 볼을 잡으면 두 명 이상이 의식하고 붙는다는 걸 잘 인식하고 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투도 드리블 좋고 슛도 괜찮은 선수지만 기회 창출이 많은 만큼 도와줄 수 있는 피니셔가 있다면 훨씬 더 좋아질 겁니다. 이건 포덴세도 마찬가지죠.

 

비티냐는 볼 잡으면 일단 앞을 바라보고 데뷔전 치고 패스도 과감하게 넣어줬지만, 아직은 그 리스크에 비해 리턴이 너무 작네요. 잘 성장해서 하이 리턴을 기대해볼 수 있는 선수가 됐으면 합니다.

 

안타깝게도 가장 위협적인 공격은 세트피스였습니다. 주무기는 역시 로망 사이스였죠. 장신의 볼리, 덴동커, 라울이 모두 빠진 세트피스였지만 사이스 하나만으로도 든든했습니다. 사이스는 코너킥에서만 셰필드 전, 토트넘 전에서 각 한 골 씩 두 골을 기록했죠. 피지컬이 좋아 헤더를 잘 따내지만, 발로도 슈팅을 가져가는 좋은 움직임을 보여줬습니다. 미드필더 출신 센터백이라는 점이 비슷한 코디보다 훨씬 좋은 선수죠. 마지막 굴절 골 장면도 사이스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네요.

 

마치며

물론 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90분 동안 틀어막으면서 기대가 생겼고, 그 기대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걸 보는 게 좀 힘들었네요.

 

지난 시즌 세비야 전, 번리 전. 올 시즌 빌라 전, 맨유 전, 뉴캐슬 전. 모두 막판에 골을 먹히면서 지거나 비긴 경기들입니다. 수비를 탄탄하게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려 앉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지키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는, 이런 경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추천과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