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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장 격렬하고 증오심이 세며 절제 없는 야만이 묻어나오는 첨예한 클럽 라이벌리를 꼽는 팬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건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역주-노스웨스트 더비)도, 선덜랜드와 뉴캐슬의 경기(역주-타인위어 더비)도 아니었다.
설문 대상자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드버리나 폴링스 파크(역주-둘 다 울브스와 WBA가 있는 웨스트 미들랜드 주에 위치한 동네)에 사는 이들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울버햄튼 원더러스 vs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의 더비가 1위로 선정됐다. ‘블랙 컨트리 더비’ 말이다.
어떤 팀들이 서로를 가장 싫어하는지를 뽑는 대회의 가치는 누가 숨쉬고 먹는 걸 좋아하는지를 알아내는 것 정도 밖에 안되겠지만 (역주-별 의미 없다는 뜻) 어느 옛말이 있듯이, 울브스와 알비온 팬들에겐 그 어떤 경기도 블랙 컨트리 더비보다 중요하진 않다.
이 이야기에서는 서로가 영웅과 빌런으로 통한다. 세계 축구에선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수들이 블랙 컨트리의 전설에는 더비 때에 결승골이나 기억에 남을 만한 활약을 했다는 이유로 이름을 새길 수 있었다.
이완 로버츠, 케빈 도노번, 롭 힌드마치, 조르당, 마크 켄들, 앤디 헌트, 조지 은다, 졸탄 게라… 정말 많은 팬들에게 그들은 지난 몇십년 동안 아이콘과도 같았다.
팀에서의 위상이나 명성을 불러오는 건 하나의 결승골이나 승부차기 선방 같은 게 아니다.
폴 크라이튼은 순전히 그가 1997년 더비 경기에서 골킥을 두 번 연속으로 장내로 차버렸다는 이유만으로 울브스 팬들의 뇌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사우스 뱅크는 몰리뉴(역주-울브스 홈구장)의 하드코어 팬들을 위한 스탠드지만, 알비온 팬들은 지난 2007년 FA 컵 경기 때 티켓 할당을 목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제즈 목시(역주-당시 울브스 최고 경영자)는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파이와 맥주 한 잔 씩을 돌렸다. 그때 만큼 그의 명성이 좋았던 시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레이엄 로버츠는 알비온에서 단 두 시즌 밖에 뛰지 않았지만 그는 1991년 경기장에 난입한 한 울브스 팬에게 당근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현역 시절엔 울브스의 스트라이커였으나 당시엔 배기스(역주-알비온의 애칭, 산업계 종사자가 많았던 알비온의 팬들이 부상을 피하기 위해 입었던 크고 헐렁한 바지 때문에 생긴 별명이라는 설이 있다. Baggies는 ‘헐렁한’이라는 뜻)의 감독이었던 보비 굴드는 로버츠가 어리둥절한 사이 그 팬을 잡아 경기장 밖으로 끌어냈다.
바카리 사코의 계약 기간이 만료됐던 2015년에는 알비온이 그를 영입하려고 했었다. 울브스의 회장 스티브 모건은 시즌 종료 후 피로연에서 그 상황에 대해 말했다. “무슨 일이 있든, 우리는 당신이 잘되길 바라요… 웨스트 브롬에 가지만 않는다면요.”
사코는 그 대신 크리스탈 팰리스에 합류했다. 그러나 이후엔 알비온에서도 뛰면서 시릴 레지스, 스티브 불, 졸리언 레스콧, 돈 굿맨, 앨리 로버트슨과 함께 두 클럽에서 모두 뛴 선수들의 반열에 합류했다.
양 클럽의 라이벌리는 어쩌면 곧바로 다른 팀으로 이적한 선수를 향하는 비난의 크기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두 팀을 중간 클럽 없이 오간 최후의 선수는 1994년 울브스에서 알비온으로 이적한 레프트백 폴 에드워즈였다. 그 후론 어떤 선수도 감히 그런 이적을 할 수 없었다.
두 팀은 각 팬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닮은 클럽들이다. 그들은 역사를 공유하고 (‘블랙 컨트리’라는 단어는 석탄 산업이 한창때였던 시절 도시를 뒤덮었던 검댕 자국과 대기 오염을 상징한다), 찬란했던 과거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비슷한 사이즈의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경기 전 울려퍼지는 음악 The Liquidator 마저 함께 사용한다. 다만 몰리뉴에선 팬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꺼지라는 구호를 외치기 때문에 연주가 금지되었다.
블랙 컨트리 더비가 9년 만에 돌아왔다. 여태까지 이보다 긴 시간 동안 두 팀의 경기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마지막 경기처럼 드라마틱하거나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면, 이번 경기는 몇 년 동안 회자될 것이다.
더비의 기원
그러나 역사적으로 울브스와 알비온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첨예한 더비의 라이벌은커녕 서로의 가장 큰 라이벌도 아니었다.
알비온과 아스톤 빌라의 더비가 전통적으로 지역에서 가장 큰 라이벌리였고, 실제로 옛날 세대부터 이를 기억한다. 울브스 역시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는 스토크 시티와의 스태포드셔 더비에서 더 큰 더비 감정을 주고받았다.
울브스와 알비온의 첫 만남은 더 풋볼 리그 창설 5년 전에 이뤄졌다. 그 버밍엄 시니어 컵 경기에선 알비온이 울브스를 4-2로 이겼다.
울브스는 풋볼 리그 첫 시즌에 알비온을 상대로 더블을 (2-1 홈, 3-1 원정) 따냈지만 양팀이 잉글랜드에서 가장 권위있는 트로피들을 두고 싸우면서 순전히 축구적인 이유로 격렬한 더비가 형성된 1950년대 전까지는 서로에 대해 별 감정이 없었다(사람들은 종종 이번 주말엔 몰리뉴에 가고 다음 주말엔 호손스(역주-알비온 홈 구장)에 가곤 했다). 울브스는 1954년 알비온을 승점 4점 차이로 누르고 리그 타이틀을 차지했고, 같은 해 알비온은 FA 컵을 들었다. 두 팀은 몇 달 뒤 채리티 실드에서 만나 4-4 명경기를 펼쳤다.
울브스 역사가 팻 퀴르케는 말한다. “울브스와 알비온은 전쟁 직후까지만 해도 그리 유명한 더비가 아니었어요. 라이벌리가 정착하던 때 전까지는 하나 이상의 지역 팀을 동시에 응원하는 팬 문화가 흔했으니까요.”
“블랙 컨트리 더비는 특히 축구 팬들이 챈트를 부르고, 깃발을 흔드는 등 훌리거니즘이 유행했던 1970, 80년대에 훨씬 커졌습니다. 그때부터 마치 예전부터 내려온 오래된 더비처럼 유행한 거예요.”
울브스의 부활은 알비온에서 비롯됐다
1986년 11월 20일은 울브스 역사에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그 날은 바로 쓰러져가던 몰리뉴를 일으켜 세운 스티브 불과 앤디 톰슨이 알비온(그들이 당시 10시즌 연속으로 1부리그에 머무르고 있던 반면, 울브스는 3연속 강등이라는 아픔을 겪었다)에서 울브스로 도합 이적료 7만 파운드에 팔린 것이다.
13년이 지나고, 불은 울브스에서 306골을 득점한 뒤 은퇴했으며, 그와 톰슨은 합쳐서 울브스에서만 1,012경기를 뛰면서 클럽이 4부리그라는 최악의 암흑기에서 2부리그까지 빠르게 올라오는 것을 도왔다.
울브스가 쇠퇴해가던 그 시절에는 알비온이 여러 선수들을 팔았다. 거기엔 로비 데니슨, 존 파스킨, 심지어 호손스의 전설적인 센터백 앨리 로버트슨도 포함된다. 5년 간의 공백 끝에 1989년 두 팀이 모두 2부리그에 위치하면서 더비가 다시 시작됐고, 적대심은 더욱 커졌다.
톰슨은 말한다. “나와 불이 이적할 때 웨스트 브롬은 1부리그에 있었고 울브스는 심각한 암흑기를 겪고 있었어요. 같은 리그에 있질 않으니 라이벌리도 그리 강하지 않았죠.”
“앨리 로버트슨이 처음으로 양팀을 오갔고 알비온 시절처럼 울브스에서도 훌륭한 활약을 보여줬어요.”
“울브스 팬들은 언제나 알비온 팬들의 면전에서 불과 나의 활약을 자랑했죠. 울브스는 저 아래에 있었는데 승격을 거듭하고 그러면서 다시 알비온과 만나고… 그때부터 서로를 향한 증오가 넘쳐났습니다.”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 서포터즈 클럽의 회장이자 알비온의 저명한 역사가 존 호머는 말한다. “내 세대의 알비온 팬들 몇몇이 항상 가장 중요한 경기가 아스톤 빌라 전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하지만 좀 더 젊은 세대로 가보면, 우리는 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빌라와 경기를 치르지 못했고 그래서 울브스 전이 굉장히 중요한 경기가 됐습니다.”
“나는 때때로 지리적인 이유 때문에 이 더비가 울브스에게 더 큰 의미를 갖게 됐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더비가 둘(울브스, 빌라)이지만 울브스는 하나니까요.”
“진정한 적대 감정은 우리가 네 선수를 팔아 넘겼던 1980년대에 시작됐어요. 앤디 톰슨, 로비 데니슨, 앨리 로버트슨, 그리고 스티브 불까지요. 그들은 울브스가 짧은 암흑기를 이겨내고 다시 상부리그로 올라오면서 대들보로 활약했습니다.”
“그 사실은 두 팀의 팬들을 갈림길에 놓이도록 했어요 – 알비온 팬들은 우리가 저들을 도와줘서 다시 올라왔다는 생각을 했고, 울브스 팬들은 알비온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했겠죠.”
“내 말은, 스티브 불의 울브스만큼 한 클럽을 상징하는 선수를 생각하기 힘들다는 거예요. 아이러니한 건 그의 유일한 1부리그 출전은 알비온 시절에 있었다는 거죠.”
1989년 불의 첫 호손스 복귀는 아마 대부분의 울브스 팬들에게 최고의 경기로 기억될 것이다. 1-0으로 끌려가던 상황, 울브스가 동점골을 넣었고 골키퍼 마크 켄들은 버나드 맥날리의 페널티를 막아냈다. 그리고 불이 경기 종료 직전에 극장 결승골을 득점했다.
“그 경기만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털이 곤두서요.” 불은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당시 울브스의 감독은 클럽을 연속 승격으로 이끈 그레이엄 터너였다.
“더비 경기 준비는 언제나 특별했어요. 그 무렵 우리에겐 불, 톰슨, 로비 데니슨이라는 전 웨스트 브롬 선수들이 있었어요. 그들과 함께 경기마다 흥을 돋궜죠.” 터너는 말한다. “그런 커넥션의 존재가 분위기를 띄워줬어요.”
“우리가 웨스트 브롬에서 그 세 선수만 딱 집어서 데려왔다는 표현이 적절할 겁니다. 그들을 싼 값에 영입할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들은 정말 오랜 기간 동안 울브스에 많은 걸 해줬어요. 불은 아마 몰리뉴에서 뛰었던 선수들 중 가장 인기 있는 선수일 겁니다. 내가 평생 했던 영입 중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어요.
톰슨도 덧붙였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 더비가 근방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알고 있었어요. 중립 팬 따위는 없었죠. 그들과 함께 즐기는 게 정말 좋았어요. 울브스 팬들은 더비 중에 집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른다고 하는데, 난 항상 그게 진짜라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전쟁에 나가는 거였죠.”
2부는 언제 올릴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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